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주셨습니다. 부족한 우리에게 언제나 사랑을 베푸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해 저는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장 42. 47)의 말씀을 주제로 한 해를 살아갈 것을 본당 공동체에 제안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성경 공부와 여러 특강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본당의 날 행사 및 여러 가지 본당 공동체 행사의 참여와 매 주일 이루어진 식사 나눔을 통하여 친교를 이루었으며, 미사와 여러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근본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려 노력했으며, 특별히 선종한 이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위안을 주는 연도를 더욱 잘하기 위하여 연도대회로서 단련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지난 한 해 우리 본당 공동체는 워싱턴 교구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 내에서도 탁월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성장과 활동에 각자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주신 신자 여러분들, 특별히 봉사자 여러분들의 희생어린 수고가 있었습니다. 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새로운 한 해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공동체가 지난 해까지 실천해 왔던 신자 공동체의 사명을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을 권고합니다. 특별히 금년이 지난 2016년 “자비의 희년”에 세계교회가 함께 마음에 품었던 ‘하느님의 자비’를 되새길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자비는 교회의 생활의 토대이며,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은 온유함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교회 공동체의 그 어떤 행위도 자비 없이는 할 수 없다”(자비의 얼굴 10항 참조)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 모두가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져라”고 권고하시면서 특별히 루카 복음이 가르쳐주는 예수님의 자비의 행위와 가르침에 집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실 교황님께서 2016년을 ‘자비의 해’로 선포하신 이유 중에는 그 해가 루카 복음을 집중적으로 듣는 전례력 다해 (C해)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3년 주기가 지나 다시 전례력 다해가 되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연중 주일에 루카 복음이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서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들음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야고 2,14) 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며(요한 13,35), ‘평화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것(필립 4,9)이며, 행복으로 나아갈(요한 13, 17; 야고 1, 25) 것입니다.
하느님처럼 자비로워지고, 자비를 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교황님께서 자비의 희년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권고하셨던 것을 여러분들에게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희년에 그리스도인들이 자비의 육체적 영적 활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비의 육체적 활동은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며,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자비의 영적 활동은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들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우리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해 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일부 편집)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피해 갈 수 없으며 그 말씀에 따라 우리는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에 따라 우리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지,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었는지,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 주었는지,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었는지,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었는지,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었는지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25,31-45 참조) 또한, 절망으로 몰아넣고 흔히 외로움의 근원이 되는 의혹에서 벗어나도록 우리가 도와주었는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수단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무지를 극복하도록 우리가 도와주었는지, 외롭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는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용서하고 폭력을 낳는 온갖 분노와 증오를 떨쳐 버렸는지, 하느님께서 한없이 우리를 참아 주신 것처럼 그렇게 인내하였는지,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 드렸는지 우리는 대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작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바로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고문당한 이들, 상처 입은 이들, 채찍질 당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과 난민들의 몸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가 알아보고 만지며 정성껏 돌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한 말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삶이 저물었을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자비의 얼굴 15항)
이러한 교황님의 권고에 따라 우리 공동체가 금년 한 해를 구체적인 자비의 실천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신자 여러분 각자와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가 금년 한 해를 하느님처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가 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질문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는 이들을 찾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실천해 주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선물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새롭게 주신 한 해를 살아가면서 우리 공동체에 결핍되거나 부족한 부분을 최선을 다해 채워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증거하고 형제자매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본받으며 전구를 청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님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9. 01. 25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에 이준성 요셉 신부